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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REPORT

고종황제는 우리나라 커피의 시작이 아니다.

고종황제와 가베

고종황제와 커피 이야기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는 잘못 쓰여졌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커피의 근원,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커피가 어떻게 전파되고 누가 처음 마셨는지 그런 것들에 흥미를 안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바로 고종황제와 커피의 이야기이다. 고종황제가 커피를 (아니 그때 당시 커피의 영어 발음을 그대로 옮긴 가비 혹은 가베라고 하였다.) 처음 마셨고 즐기셨다는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나 역시도 어디서 들었는지 그것이 정설인 것처럼 알고 있으며 역사를 다루는 공영방송의 TV프로그램에서조차 본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이 사실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며 밝혀진 바도 없고 역사 기록들을 봤을 때 이미 그 이전에 가베는 우리나라에 꾀나 깊숙이 침투해있었다는 것이다. 진실일까? 이 이야기를 하려면 고종황제가 아관파천을 하던 그 때 당시 시대로 돌아가봐야 한다.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고종의 수난, 그리고 고종황제를 가베를 이용하여 살해하려던 음모 등 역사 이야기를 쭉 따라가봐야 한다. 겸사 겸사 의미 있는 포스팅이 될 것 같다. 지금부터 커피가 정착하기 시작했던 18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고종황제가 처음 커피를 만났다는 그때, 아관파천]

아관파천 러시아 대사관 복구중

 아관파천 당시 러시아 대사관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러시아제국을 ‘아라사’라고 했다. 따라서 아관이란 러시아 대사관을 뜻하며 아관파천이란 국왕의 거처를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겼(파천)다는 뜻이다. 파천이라 함은 피란을 갔다는 의미가 있기에 사실 그 때 당시에는 파천이란 표현을 쓰지는 않았다고 한다. 

아관파천

 고종황제는 어떻게 경복국을 떠났나?

1895년 음미사변으로 조선 국민의 대일 감정이 극도로 악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의병까지 일어나 전국은 카오스상태였다. 그때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공사관 보호라는 명목으로 수병 백명을 서울로 데려왔다. 이때 이미 조정은 일본의 앞잡이들로 가득했던 터라 일신의 안전마저 보장받기 힘들었던 고종황제는 어디로든 안전한 곳으로 가야 했고 친러파인 이범진 등이 베베르와 공모하여 건양 1년 (1896년) 2월 11일에 국왕의 거처를 궁궐(경복궁)에서 병사가 보강된 러시아 공관으로 바꾸게 된다.

 

고종황제의 탈출기

이때 고종황제의 탈출은 황제답지 못하였고 오히려 미션임파서블 같았다. 탈출은 이러했다. 그 당시 궁녀들은 아침 일찍 가마를 타고 궁궐의 안뜰까지 간 다음 거기서 근무교대를 하였다. 그때는 아무리 개화바람이 불었다 해도 여자가 탄 가마를 수색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종황제는 밤 늦게까지 일을 하거나 책을 보고 늦잠을 자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기에 아침에는 늘 잠만 자서 아침만큼은 고종황제에 대한 감시가 느슨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종황제는 그 가마를 타고 궁을 빠져나가는 계획을 짰고 가마꾼들 조차 공관에 갈 때 까지 그 가마에 고종황제가 탄 줄도 몰랐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철저하게 비밀리에 치러졌고 그만큼 고종황제는 아무도 못 믿는 힘든 상황이었고, 그만큼 고종황제는 궁녀만큼 가벼웠.... 헉...!!

 아무튼 고종황제의 아관파천 당일은 이런 식이였다.

 

고종황제의 가베 그 첫만남은?

러시아 공관에서 생활하던 고종황제는 그 안에 있지만 일본의 감시를 피하지 못한 상태였다 어디를 간들 피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무튼 고종황제는 아무도 못 믿었기에 음식물조차 외부에서 조달해서 먹었다 한다. 이때 외부에서 음식을 조달해준 이가 미스 ‘손탁’이라는 친구인데 이 친구에 의해 고종황제가 가베를 처음 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이다.

 

고종황제는 그 당시 쓰디쓴 가베를 마시며 자신의 삶의 모습을 씁쓸히 즐겼는지도 모르겠다는... 감상적인 출처 불문의 이야기가 있긴 하다. 고종황제의 가베와 관련이 깊은 손탁, 고종황제에게 음식을 조달해준 공으로 고종황제는 훗날 그녀에게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땅 위에 손탁 호텔을 지었고 아주 훗날 그곳은 미스터 션샤인의 김민정이 주인행세를 한 글로리 호텔이 된다.(컥!!!) 참고로 손탁 호텔은 드라마에서 보던 대로 호텔식 커피샵이 실제로 있었고 을사늑약 때는 이토히로부미가 그곳에 머물다가 고종황제에게 갔다고 합니다. 이래저래 슬픈 역사를 간직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는 폭파시켜버렸나 봐요.(화끈했으~)

 

손탁 호텔

고종황제와 가베에 얽힌 또 다른 스토리 (고종황제 독살 미수 사건)

커피와 인연이 깊은 고종황제, 커피는 1898년에 고종황제 독살 음모 사건에도 등장한다.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생활 당시 공사관 통역으로 일했던 역관 김홍륙은 말이 안 통하는 고종황제를 비웃듯이 이래저래 많은 비리를 저지르고 있었고 나중에 비리가 들통나자 전라도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마저도 사실은 고종황제가 그를 죽이려 했으나 주위의 방해로 번번히 못하다 결국 행한 게 겨우 유배였다. 그 당시 선고내용은 이렇다.

 ‘교섭하는 자리에서 통역을 할 때 말 한 미디의 차이가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거늘, 저 교활한 자가 국가의 후한 은혜는 생각지 않고 동을 가리켜 서라고 하고, 가를 돌려 부라 하여 두 나라가 서로 의심하게 만들었다. 또 공무를 빙자하여 온갖 짓을 다해 사리사욕을 채웠다....유해형에 처하여랏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 보면 이와 같은 통역의 간교함과 역적 짓이 스토리에 잘 녹여있다. 드라마 참 잘 만들었다~. 아무튼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이 간 큰 김홍륙이 유배를 떠나기 전 고종황제 암살을 시도한 것입니다. 횽륙은 그의 처 김소사를 통해 공흥식에게 독약을 전했고 공흥식은 임금님의 서양요리를 하다가 쫓겨난 적 있는 김종화를 매수해서 고종황제와 세자가 즐겨 마시는 커피에 독을 타도록 했다는 것이다.

 

커피 이야기 고종황제와 순종

하지만 다행히 커피 마니아였던 고종황제는 먹다 맛이 이상해서 ‘맛이 왜이래~’ 하며 뱉었고 생각 없이 반잔을 꿀꺽 삼킨 세자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고 한다. 이 독차 사건으로 인해 고종황제는 무사했지만 세자는 무려 18개의 이가 나가고 의치를 했다고 한다. 사실상 몸이 만신창이가 된 것이다. 그는 부축을 받지 못하면 잘 일어나지도 못하였고 후세도 볼 수 없었으니 김홍륙은 고종황제를 암살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왕실의 미래를 암살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김홍륙과 공흥식, 김종화는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처참하게 죽었다. (유배나 갈 것이지,...) 그리고 알선을 했던 그의 아내는 백령도 유배형에 처해졌다.

불쌍한 순종

 일년이 조금 넘은 공사관 생활을 끝내고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에 돌아온 고종황제는 아관파천 때 공사관에서 알게된 커피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환궁한 뒤에도 커피를 즐겼다고 하는데 (독차 사건 이후 나 같으면 안마셨을 것 같은데 진정한 마니아다!!) 역시 서양식 건물에서 가베를 마셔야 제맛 이라며 1900년에 최초의 서양식 건물을 짓게 했는데 그것이 고종황제의 침전인 함녕전 뒤에 자리잡은 ‘정관헌’이다. 러시아 사바친이란 자가 설계한 이 정관헌은 삼면이 트여있는 정자 분위기도 나고 접견실 분위기도 나는 그런 건물이었다. 고종황제는 정관헌에서 커피와 다과를 즐겼다고 하는데 관료들과 정무를 논하거나 외교사절단의 알현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는 거짓이 있다고 하는데 무엇이?"

 고종황제의 커피와 관련된 거짓 이야기들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장인 박종만씨에 의하면 고종황제의 이러한 커피 일화는 거짓이고 단순히 역사와 커피를 연결한 흥미-유발성 거짓 정설이라고 합니다. 어떤 부분이 그럴까요?

 

 커피는 고종황제의 아관파천보다 훨씬 전에 이미 조선에 유입되었다.

동양문화에 관심이 많던 미국의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1883년 조미수호통상사절단 (민영익, 홍영식, 유길준 등 11명)을 미국으로 수행하고 안내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 해 왕실의 초청을 받아 겨울 동안 조선에 머물게 됐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조선의 풍속이나 문화를 기록한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책을 써서 조선을 서구에 알렸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아침은 정말 고요한가부다 이때도 고요한 아침 이야기가 나온다) 그의 기록을 보면 1884년 1월 어느 고위관료의 초대를 받아 한강 별장에서 놀다가 “우리는 다시 누대 위로 올라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 이었던 커피를 마셨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이미 1884년 이전부터 커피는 유행이었던 것이다.

 

 1800년 시대 세계는 이미 근대화로 들어섰고 제국주의는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었으며 커피는 이미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시점이었다. 영국은 커피하우스가 정치적 토론의 장이 되는 것이 짜증나서 커피 금지령을 공포하였고 프랑스의 경우 1686년 카페 프로코프가 문을 연 이래 많은 지식인들이 활발한 교류의 장으로 사용하였고 1800년대에는 파리에 카페가 바글바글하였다고 한다. 그런 그때 1876년 조선은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빗장을 풀었고 많은 서양 제국들이 진입을 했는데 그 때 이미 커피와 관련된 교류는 충분히 있었으리라 예상되며 많은 기록에서 조선에서의 커피관련 기록이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너무 길어져서 생략)

 

고종황제와 관련된 그 어느 기록을 보아도 고종황제와 커피의 이야기가 없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근거 자료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는 주장이 있다. 실제로 그것에 대한 반박은 없는 거 보니 진짜 없는 거 같다. 오히려 그러한 주장을 하는 측에서는 위의 예제와 같이 이미 그전에 커피가 유행했다는 증거는 넘쳐난다고 말하고 있다.

 

고종황제는 한가하게 정관헌에서 커피를 즐기지 않았다?

실제로 정관헌에서 고종황제는 커피를 마시며 즐겼을까? 고종황제의 커피 설은 거짓이라고 주장하는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이 정관헌 연구에 참여한 한 대학의 건축역사 연구실에 질의한 결과 ‘건축학적 측면으로 볼 때 정관헌은 연유(연회)를 위한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불 수 없다”는 답변만을 받았을 뿐이라고 한다. (대학은 왜 꼭 말을 어렵게 꼬아서 말하나 몰라)

고종황제가 가베를 즐겼다는 정관헌

실록의 어디를 봐도 고종황제가 커피를 즐겼다는 기록은 없고 오히려 정관헌에서는 역대 왕의 어진(왕의 초상화)을 모시고 제례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런 곳에서 커피를 마신다? 쫌 까리하다. 왈츠와 닥터만 커피 박물관 측은 ‘역사적 사실이 가볍게 폄하되고 한 나라의 궁궐 역사가 상술의 도구로 전락해버리고 마는 작금의 세태를 우리는 이대로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라며 고종황제의 커피 역사는 거짓이고 잘못된 상술로 이용된, 그리고 너무나도 널리 퍼진 거짓 역사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종황제와 커피 이야기 마무리

커피를 좋아하지만 고증을 일일이 찾아보며 함께 연구하여 이것이 거짓인지 참인지 단언할 순 없지만 적어도 커피의 역사, 그것도 그 시작점을 찍는 이러한 중요한 부분이 거짓된 이야기라면 하루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떠셨나요 커피의 시작은 어디인지 역사 속 커피 이야기를 찾아보니 느껴지는 것은 커피라는 것이 비록 서양에서 넘어왔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해온 녀석이라는 생각이 더 커지네요 

 

NATIONAL FOODGRAPHIC COFFEE REPORT '역사 속 고종황제와 가베'